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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브릿지 연재

우리는 클래식을 통해 음악이 아닌 시대를 듣는다. - 클래식, 시대를 듣다.


우리는 클래식을 통해 음악이 아닌 시대를 듣는다. - 클래식, 시대를 듣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마인드 브릿지 어플을 통하여 인문학 강의를 듣고, 강의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윤수 교수의 '클래식, 시대를 듣다'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정윤수라고 하면 축구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는데, 클래식에 대해서도 해박하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클래식이라는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번 강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인드브릿지 어플 소개<링크>


사실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클래식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이번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져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부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제목 그대로 클래식을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과 성격, 있었던 일 등을 들 수 있었는데요. 우리가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유 그 실체에 대해서 많이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괴된 시대의 파괴된 언어 나치
이번 강의에서는 나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1차 ~ 2차 세계대전 당시 음악가들의 변화 모습을 그려보고 그런 음악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클래식 중에는 반 히틀러적인 사상이 들어가 있는 클래식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실제 더 많은 이유와 사회적/내적인 개인사들이 얽혀져 있기에 히틀러 때문에 그 음악이 나왔다고 말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표현주의 시대는 미술과 문학 등 기존의 장르가 무엇이 되든 19세기까지 구축되어 왔던 기존 장르의 리얼리즘적인 문법들을 20년대의 젊은 층의 예술가들이 없애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대가 파괴적이고 장차 파괴되어 갈 것이고, 파괴되고 있는 시대를 목격했거나 예감했던 예술가들이 단지 예술의 변화와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당대의 위기와 불안 의식을 담아 내려면 기존의 예술이라는 그릇이 너무 깨끗하고 깔끔했기 때문에 비유를 하자면 식탁을 새로 차리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18~19세기에는 인간은 완전성을 가진 어떻게 하면 인간을 잘 그려 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1~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자기 마음의 내적인 상태를 그대로 들어내는 표현주의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마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시대였음을 나타내고 있으나 실제 당시의 미술은 어둡기만 했지요. 대표적인 예술가인 막스 베크만과 오토 딕스는 둘다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사람으로 죽음과 시지 절단된 사람들과 피빛으로 물든 하늘 등을 보면서 희망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 있는 절망속에서 살았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하여 알 수 있지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서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괴벨스와 히틀러는 베르크의 작품처럼 기괴하고 그로테스크 한 리듬의 향연이나 선율의 파괴가 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웅장하고 단순하고 장엄하면서 국민 총화나 애국 단결을 해야 하는데 기존 베르크의 음악은 왠지 자신의 뜻과는 다른 세계를 노래하는 것 같고 순수한 게르마니즘을 보여 줄 수 있는 미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마그누스 히르쉬펠트라는 성과학자가 인종의 우열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끌어내자 괴벨스 같은 사람은 못마땅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의 연구실을 습격하여 서책과 자료를 모두 불지르기도 했습니다. 괴벨스와 히틀러는 리듬의 단순성, 단순성의 미학을 잘 나타내는 예술가의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런 시대에 활동했떤 음악가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단순성의 미학을 고대의 주술적인 제의적인 것으로 재현을 했습니다. 정윤수 강사는 강의 중에 '봄의 제전'을 보여주었는데 재현 방식이 다 다르고 표현이 다양해서 봄의 제전이 걸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민족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전승하는 민요에 대한 복원, 이런 것들을 단순하고 웅장한 선율에 담아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욕망이 단순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나치즘과 결국 본질적으로 맥락을 같이 하면서 나치 음악 교육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탈린 시대의 예술가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히틀러에서 스탈린으로 정권이 변경된 과도기에도 그림 또한 힘, 앞으로 나아가는 직진성, 진행 등이 나치즘의 미학으로 존재했으며, 이러한 나치즘의 미학이 나타나지 않은 그림은 나치즘과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아놓고 불을 지르는 등의 양상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당시에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마이콥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3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들 또한 변화를 추구하고 다양한 장르의 표현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소련 인민의 사회주의 이상이나 전쟁 중의 견디어 냈던 인민의 힘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단순성의 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아방가르드한 문학의 세계는 스탈린 체제로부터 억압과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마야콥스키는 예술가의 활동을 자살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실험의 연속
쇼스타코비치는 현악 4중주 15곡을 남겼고 그것이 브람스, 슈베르트, 베토벤이 남겼던 현악 4중주와 맥락을 같이 해서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일기장으로 통하고 남아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24개의 전주곡집을 내기도 했는데 이는 바하가 했던 음악 언어를 300년 후에 재해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을 시도하는 음악 내적인 작업을 했을뿐만 아니라, 현악 4중주 15개 중 '레닌 그라드' 작품으로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을만큼 국가적 영웅이면서 항상 숙청의 대상이 되는 아슬아슬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을 통하여 그의 내면까지 볼 수 있지요.


사실 이번 강의가 개인적으로는 조금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2~3번 이상 다시 강의를 듣고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요. 19세기~20세기 클래식들이 어렵다고만 단순하게 생각만 했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과 그런 음악의 성향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는 좀 더 클래식을 쉽게 접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제목처럼 클래식을 통하여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을 통해 시대를 듣는다는 말이 참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거나 클래식을 통하여 1~2차 세계대전의 시대적 배경 등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번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