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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브릿지 연재

음악으로 세상을 본다 - 음악 속의 철학


음악으로 세상을 본다 - 음악 속의 철학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음악(노래). 음악 속에는 각기 다른 사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음악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생각하며 듣는 것과 아무런 생각 없이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음악은 우리 생활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음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인드 브릿지 어플, 인문학 강의를 통하여 오희숙 강사의 '음악 속의 철학'이라는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희숙 강사 본인이 직접 쓴 '음악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음악'이라는 책을 토대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마인드브릿지 어플 소개<링크>

우리는 음악을 통하여 감동도 받고, 소름도 끼치는 등 감정의 변화를 겪는 감성적인 측면의 감동도 경험하지만, 음악을 주로 감상하면서 혹은 본인이 직접 연주를 하거나 혹은 음반을 들으면서 뭔가 사유의 세계가 전개되는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강의는 이런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쉽게 풀어 나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두 권의 책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음악과 관계가 있는 생각들을 연결 시켜놓았는데, 음악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시간, 감정, 수, 모방, 언어, 천재, 현실 진리 등의 요소들과 연결시켜 책을 구성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음악을 어떻게 했으며, 그들의 철학 책속에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다뤄놓았습니다.

#시간의 예술
음악에서 시간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음악에는 시간성이 분명이 있는데, 이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변화되고 있고, 변화되는 양상이 굉장히 흥미롭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음악은 시간예술이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듣는다면 30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본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음악은 시간 속에서 재현되기 때문에 시간예술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있지요. 그리고 음악은 다른 예술과 달리 구체화되기 위해서 '연주'라는 매체를 통하게 되고 시간 속에서 구체화가 되는 것입니다. 음악은 객관적 시간성, 주관적 시간성, 체험의 시간성이라는 이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요.


#다른 음악, 다른 시간
슈베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19세기에는 전통적인 고전 음악의 틀인 규칙성 안에서의 개성이 드러났다면 20세기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현대 음악에서는 통일적 분절된 시간, 목적론적 시간이 해체되면서 시간의 공감화, 무(無)시간성, 시간의 소멸, 무한한 시간성의 특징들이 나타났고, 그 변화를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영화 제목부터 시간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제도화된 음악을 거부하고 예술에 있어서 작곡가가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도성을 멀리하여, 참여 예술, 현장 예술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음악의 시간성 모색, 시간의 소멸을 나타내며, 우연성 음악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예측할 수 없는 객석의 반응 등을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오희숙 강사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며, 음악 속에 담겨져 있는 시간성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음악과 사회를 보는 다섯 가지 시각
예술은 사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악과 현실은 어떤 관계가 있고, 음악은 과연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은 현실에서 정치와 연관성을 많이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스탈린 체제로 넘어가면서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아래 음악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고 이에 소비에트 체제가 원하는 방향의 음악이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량 어떤 목적을 가직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면 그 집회에서는 음악이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듯 가까운 주위에서도 음악과 현실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고, 그 현실에 맞는 음악을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음악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회가 음악을 변화 시킨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음악
진정한 음악 작품은 사회적 의미와 의미의 카테고리가 침전되어 있어야 하며, 사회의 미메시즈(재현, 모방)를 강조했던 아도르노의 이론(음악이 사회를 재현해 놓은 것이 아니라 닮아가는 것), 마지막으로 달하우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달하우스는 마르크스 주의를 굉장히 비판하고, 루카치의 반사법칙도 비판하고 아도르노의 사상도 비판했습니다. 달하우스는 진실의 미학을 강조했는데, 기존에는 미(美)라는 아름다운 그 자체를 중시했다면 19세기에는 우리의 삶 자체를 진실이라 여기고 진실을 음악에 표현해 내려고 하였고, 이것이 음악의 리얼리티즘이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역사적, 사회적인 감정이 음악에 나타나는 것이며, 서양음악에서 나타나는 주기성과 규칙성이 깨어진 산문법칙은 현실에 좀 더 다가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당시의 새로운 양식의 음악은 원래 전통적인 작곡론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인용기법과 양식의 혼합이 주를 이뤘고, 전통적인 원칙, 화성, 선율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특성을 표현하고, 감정 표현을 양식에서 벗어나서 적나라하게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대중 음악 중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라는 음악에서도 현실(사회주의)가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대중 음악을 듣다보면 장기하의 노래처럼 꼭 나의 이야기 인듯하고 있을 법한 노래라고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과 현실이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까지 음악이란 현실에서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표현된다는 단순한 생각만 했었는데, 이번 강의를 듣고 현실과 음악의 연관성, 현실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어 좀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오희숙 강사의 ‘음악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음악’이라는 책을 통해 시간과 현실 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감정, 수, 모방, 언어, 천재, 진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음악 속의 철학을 이렇게 강의를 통하여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의 시간성 문제를 음악적, 철학적, 역사적, 예술적 시간으로 논할 수 있었던 유익한 강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듣더라도 좀 더 진진하고 깊이 있기 듣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