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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브릿지 연재

시인 김수영과 철학자 미셸푸코, 자발적 복종의 광기에 대해서


시인 김수영과 철학자 미셸푸코, 자발적 복종의 광기에 대해서


마인드브릿지 인문학 강의를 통하여 강신주 강사의 시인 김수영과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조합을 통해서 무의식적 또는 자발적 복종의 무서움에 대해서 다룬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인드브릿지 어플 소개<링크>

어플로 보는 인문학 강의

4.19 혁명의 뒤안길에서 고뇌하는 시인 김수영
시인 김수영을 떠올리면 '푸른 하늘을'의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고독한가를'... 소절이 회자 되곤 합니다. 김수연은 서구시민사회로의 조바심이 있던 시인 중의 한명이었지요. 김수영의 시를 읽어보면 서구시만사회의 꿈은 어렵게 생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허접하고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이고 말도 안되는 논리와 힘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정치 이야기도 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시인 김수영(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이런 배경 속에서 4.19혁명은 시작되었고, 김수영의 시선을 통해서 4.19시대, 1960년 군부독재가 시작되어 5.16군사 쿠테타까지 당시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고 느꼈는지를 복원이 됩니다. 당시에 민주화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시인과 문인들이었지요. 4.19혁명은 영구 집권을 꾀하던 이승만 자유당정권이 12년에 걸쳐서 장기 집권을 종식시켰습니다. 4.19가 상징적인 이유가 사람들에 의해서 최고의 권력자가 물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이러니하게도 하와이에서 사망한 이승만의 운구가 한국으로 이송되었을 때, 30만명의 국민들이 슬퍼했다는 것이지요. 민주화를 이끌었고, 앞장섰던 김수영의 입장이서는 이런 모습들이 이해가 되지 않고 참 서글펐을 것입니다. 독재자가 죽었을 때 한국땅을 다시 못밟게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30만명 국민들의 애도의 물결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념은 왕 같은 권력이 사라지고 그 모든 권력이 개개인에게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나 결국 독재자를 쫓아내지 못했던 것이고,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에 국민들이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헤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독재자를 쫓아냈으나 실제 그들의 잔상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김수영은 알고 있었고, 김수영은 시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푸코, 구성된 주체에서 구성하는 주체로
조르조 아감벤(이탈리아 철학자)은 9.11 테러 이후 서구권에서 폭발적인 인기가 있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철학자였습니다. 아감벤이 복구시킨 사람이 발터 벤야민과 미셸 푸코 2명이지만, 이번 강의는 미셸 푸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졌습니다.(미셸 푸코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지난글을 참고하세요!-> http://bookhand.tistory.com/521)

미셀 푸코

미셸 푸코는 아감벤보다 더 빨리 우리나라에서 소개되었으나 유행처럼 잊혀졌다가 아감벤의 '호모사케르'가 나오면서 미셸 푸코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미셸 푸코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계보학'입니다. 계보학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이라는 것에서 처음 쓰여진 말인데, 인간인 내가 결과물로 가정한다면 내가 결과로 나오기 위해 어떤 경로와 조건을 충족시켰는지 구조를 규명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는 결과물의 '나'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여러 조건 중의 하나를 제거하면 된다는 말도 되는 것이지요. 결과물은 한 개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조건, 원인은 무한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주체(구성된 주체)가 되느냐, 나 스스로가 만드는 주체(구성하는) 주체가 되느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계보를 분석해서 필요 조건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조건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 푸코의 이론이고, 이 때문에 푸코를 혁명적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무언가에 의해서 길들여져 있으면 자유와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정치 철학의 최고의 테마는 자발적 복종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순간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나는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져있고, 이것이 자발적 복종에 해당 되지요. 예를 들어서 너 왜 그렇게 그 사람에게 복종을 하냐?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혹시 사기라도 당한거냐? 고 물었을 때, 아니야 내가 결정한 것이야, 내 마음이 그렇게 따르고 있어!라고 한다면 이것이 자발적 복종인 것입니다. 자발적 복종이 아닌 구성하는 주체가 되자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며, 아감벤이 탁월한 것은 미셸 푸코의 이런 측면을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운구가 한국으로 이송되었을 때 독재자의 운구를 보며 슬퍼한 것도 우리 사회가 이승만 정권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여자가 남자에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너의 모습을 봤어, 너무 멋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여'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남자는 자신의 그런 측면을 좀 더 부각시키려는 욕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경우라면 여자는 남자의 욕망을 부각시키고 길러주는 사람이 되고, 길들여지지 않은 남자의 측면을 찾아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되면 위대해 지게 됩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고 길러주는 그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매력젹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실례로 문학만 고집하던 벤자민도 사랑에 빠지면서 사회철학자로 거듭나게 되기도 했지요. 시인 김수영도 그 당신의 권위주의 사회의 모순을 인식했고, 민주주의를 꿈꿔왔으나 김수영 본인도 권위주의에 물들여져 있었기에 권위주의의 노예였고, 극복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변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푸코의 철학을 이해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성하는 주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구성된 주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강신주 강사는 '나는 생각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곳에서 생각한다'라는 표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지요. 의미를 들여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나 자신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와 화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실제 존재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나와 화해를 해야합니다.

이번 강의는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며, 여운이 남는 인상적인 강의였습니다. 그간의 강의가 지식의 깨달음을 가져왔다면 이번 강의는 사색의 시간을 부여해준 의미있는 강의였던 것 같네요. 그리고 시인 김수영과 미셸 푸코라는 인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나, 그 모습을 지금껏 나라고 믿었고, 실제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고 있는 나와 실제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에 당황하면서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 또한 그 둘 사이의 간극의 거리에서 아둥바둥 사투를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와의 화해를 통해서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려고 노력하는 구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